에프엑스는 SM엔터테인먼트의 빅토리아, 루나, 설리, 엠버, 크리스탈로 이뤄진 5인조 걸그룹이다. 2009년 9월 1일 에프엑스는 디지털 싱글 음반 〈LA chA TA〉로 데뷔하여, 〈Chu~♡〉, 〈Nu ABO〉, 〈피노키오〉, 〈Hot Summer〉, 〈Electric Shock〉 등 다양한 음악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에프엑스의 음악은 x 값에 따라 y 값이 변하는 함수처럼 다채롭다. 그들은 ‘섹시, 상큼’ 같이 통일된 콘셉트를 내세우는 달리 멤버 자체의 개성을 중시했다. 다양한 목소리가 담긴 그들의 노래는 사랑을 넘어 세계를 향해, 첫 사랑니처럼 선득하고 전기 충격만큼 짜릿한 사랑의 언어로 나타났다. 에프엑스의 실험적인 도전은 숱한 명곡을 대중들이 에프엑스의 컴백을 염원하게 했다.
『와와걸』은 와와109에서 간행한 연예 전문 잡지로, 전국 서점 및 문방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주 독자층인 여성 청소년을 겨냥하여 와와걸의 표지 모델은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이 주로 맡았다.1 즉, 『와와걸』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연예인의 바로미터였다.
잡지의 내용은 연예인의 가십과 심리 테스트, 패션, 뷰티 등의 생활 밀착형 정보로 구성됐다. 독자들은 단순한 심리 테스트로 친구와의 우정을 가늠하고 오싹한 괴담을 공유했다. 그리고 학생 기자단을 꾸려 청소년 문화와 가장 가까운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했다. 반 배정의 두근거림, 짝에게 건넬 재치 있는 인사 등 학생 기자단이 투고한 글은 그 어떤 글보다 큰 공감을 일으켰다.
또한 『와와걸』은 잡지와 함께 해당 호 표지 모델의 스티커와 브로마이드를 제공했다. 이는 연예 산업이 조성되기 전 굿즈를 판매하던 유일한 창구로써 와와109의 이미지를 굳히는 일련의 묘책이었다.
롤리팝은 2NE1, 빅뱅이 2010년 발매한 팝 장르 가요이자 LG전자에서 만든 CYON 피처폰의 코드네임이다. 폴더폰 춘추 전국 시대였던 2000년대 후반, CYON이 야심차게 롤리팝을 출시했다. 당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빅뱅과 차세대 여자 빅뱅으로 등장한 2NE1을 모델로 내세워 1020 소비자를 겨냥한 마케팅을 선보였다. 통통 튀는 음악과 재치 있는 가사, 인기 아이돌이 반짝거리는 휴대폰을 흔들며 춤을 춤을 추는 뮤직비디오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롤리팝 휴대폰은 표면에 220개의 LED를 탑재하여 당시 휴대폰들 사이에서 혁신적이었다. 다만 휴대폰 색상이 (블랙을 제외하고는) 블루와 핑크에 한정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적었다. 고정관념에 기대어 나온 롤리팝은 소비하는 청소년들 사이에 불문율을 만들어 남학생은 블루를 여학생은 핑크를 주로 가지게 했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2”
알은 한때 통신 요금제의 단위였다.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깨지는 알처럼, 요금제 단위로서의 알 또한 매번 소중히 다뤄야만 했다. 알을 모두 소진하면 휴대폰을 가지고 있어도 연락을 할 수 없어 학생들은 한 알 한 알을 아꼈다.
천지인 자판으로 꾹꾹 눌러 쓴 문자들은 알로 결제됐다. 매일 함께 다니는 친구지만 문자로 전하는 말들은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낭설들은 알 속에 담겨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다. 스마트폰 등장은 알의 종언을 고한다. 알은 저편으로 날아간다. 그 저편의 이름은 과거다.
스킬자수란 전용의 그물코와 바늘, 실뭉치를 사용하여 기본 설계가 그려진 그물코에 털실을 꿰는 자수 공예다. 당시 초등학생들은 정규 교과 시간이나 특별 활동 시간에, 또는 방학 숙제로 꼬물거리곤 했다. 당대 엽기 코드가 유행하며 큰 사랑을 받은 ‘마시마로3’, ‘뿌까4’, ‘헬로키티5’ 등의 캐릭터가 그물코 도안으로 유행했고, 디자인 감각이 있는 학생들은 스스로 원하는 도안을 그리기도 했다.
최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달고나 커피6’가 반짝 유행했다. 잠시 멈춘 일상에 반복되는 무용한 노동은 그 시절의 스킬자수와 흡사하다. 단순하지만 손을 바삐 움직여야 하는 달고나 커피와 스킬자수는 사람들에게 성취감과 안정감을 준다. 지루한 나날 중 새로운 도전이 일상을 신선하게 환기하는 것이다.
케로로 빵은 청소년들에게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당시 인기리에 방영된 만화 《개구리 중사 케로로7》의 캐릭터 스티커가 동봉된 빵으로, 다양한 종류의 스티커들은 학생들의 수집욕을 자극해 지속적인 구매를 이끌었다. 이렇게 빵과 같이 들어있는 스티커를 ‘띠부띠부씰8’이라 부른다. 띠부띠부씰은 한국에서 대다수가 공유하는 문화적 경험으로써 사회적 세대를 묶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90년대 ‘국진이 빵’, ‘핑클 빵’의 성공은 띠부띠부씰을 본격적으로 제작하게 했다. 씰 수집은 하나의 취미가 되어 전국에 너나 할 것 없이 스티커를 모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띠부띠부씰 수집 문화는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 관심 없는 소비자까지 포용하며 한 번도 안 산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산 사람은 없는 기묘한 현상을 빚었다. 이러한 현상은 작금에 케로로 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빵의 맛이 아닌 자신이 모은 스티커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오락실 노래방9은 오락실 안에서 저렴하게 노래방을 이용할 수 있어 전국적인 사랑을 받았다. 지역에 따라 ‘오래방’ 혹은 ‘코노(코인 노래방)’, ‘동노(동전 노래방)’10로 줄여 불렀으며 오락실 노래방을 지칭하는 말로 화자의 연배와 출신지를 가늠할 수 있다.
오늘과 비교하자면 과거 오락실 노래방의 시설 수준은 현저히 낮았다. 노래방의 꽃인 에코가 없는 경우는 다반사였고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아 옆 부스의 노랫소리가 그대로 들리곤 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오락실 노래방은 가까운 거리에서 타인의 호흡을 공유하던 그때의 파열음으로 남아 있다.
시끄러운 전자음, 매캐한 오락실 먼지 냄새를 닫고 겨우 두 명이 정원인 노래방 부스로 들어간다. 좁은 공간에서 움직임은 불허된 채 노래만 불렀다. 문에는 풍기 문란과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유리창이 달려있고 부스 내부를 가득 채운 낙서에는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의 사랑과 용기가 담겨 있다. 깊은 곳에서 넘쳐 오는 마음으로 꾹꾹 눌러 ‘원더걸스 사랑해. 돌아와 선미야.’
꽃무늬로 도배된 쿠션과 벽지, 흔들의자와 그네는 캔모아의 알파 그 자체였다. ‘최초의 생과일 전문점’이자 ‘공주풍 카페’를 자처한 캔모아는 2000년대 청소년들의 무구한 애정을 받으며 등장했다. 캔모아의 주력 메뉴는 고운 얼음 위 달콤한 연유와 상큼한 과일을 올린 눈꽃 빙수, 그리고 떡에 구멍이 뚫린 달콤한 바람 떡볶이였다. 당시 눈꽃 빙수는 팥과 떡 고명을 올린 팥빙수의 전형을 탈피하며 ‘빙수 포스트모더니즘’을 실천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기 있었던 메뉴는 기본으로 제공되던 토스트와 생크림이었다. 직원의 눈치를 보며 두세 번씩 받아온 토스트는 캔모아를 방문한 기억이 있는 모두에게 길티 플레져로 남아있다.
지금의 카페가 갖는 복합적인 공간성과 달리 당시의 캔모아는 오롯이 소통을 위한 공간이었다. 엄밀하게 청소년 소비자를 위한 만남의 광장이었던 캔모아는 카페에서의 소비를 허세와 허영, 사치로만 해석한 꼰대들에게 항변하는 장소였다.
‘다리가 길~어 보이는 학생복’에 만족하지 못했던 우리는 수선 집으로 향했다. 교복 수선은 ‘학생은 학생답게’라는 통념에 저항하는 신호로써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개성 표현의 경험으로 남는다. 주로 남학생은 바지통을, 여학생은 치맛단을 줄이며 교복을 자기 몸에 딱 맞췄다. 교복을 수선할 때, 당시 유행한 기성복의 논리는 수선의 기준이 되어 교복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스키니 진이 유행하며 남학생의 바지통이 발목으로 갈수록 점점 줄었고, 다리가 딱 붙는 교복 바지에 맞춰 셔츠와 재킷 기장도 함께 줄였다. 학생들은 교복 셔츠 위에 맨투맨과 후드티를 덧입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곤 했다.
이전 세대가 수선해온 교복의 형태는 현 교복 시장에서 하나의 공식으로 이어졌다. ‘허리가 잘록한’, ‘라인이 살아나는’ 따위의 교복 광고 문구는 의도적으로 미적인 부분만을 강조해, 삼 년 동안 입을 교복 선택에 최우선으로 고려할 부분이 교복의 외형이라는 생각을 교묘히 주입했다. 특히 점점 짧아지는 여학생들의 블라우스와 치마는 일찍부터 불편한 교복으로, 성적 대상화의 위험 속에서 학업을 진행하는 삼중고를 겪게 했다. 심지어 ‘생명과도 같은 틴트를 안쪽 주머니에 쏘~옥!’이라며 여학생 교복 재킷에 등장한 ‘틴트 주머니’는, 노골적으로 꾸밈 노동을 수반하며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외모의 통념을 죄책감 없이 드러낸다.
한국에서 ‘니베아11’를 논하면 선크림, 핸드크림보다 립밤을 우선으로 언급한다. 현재 니베아의 입지를 구축하는 데 크게 일조한 립밤은 과거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립밤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들의 주머니 속에 항상 자리해온 립밤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니베아 체리’는 바르면 자연스러운 붉은 입술을 연출할 수 있어 입문용 립스틱으로 사랑받았다. 한때 ‘클린앤클리어 훼어니스 로션12’과 짝을 이루어 등교할 때 바르는 화장품으로도 유명했다. ‘니베아 펄앤샤인’은 니베아 체리가 유행하며 등장한 분홍색 패키지의 립밤이다. 소비자들은 니베아 체리의 분홍 버전으로 오인해 구매했지만 바르면 오히려 입술이 생기를 잃고 창백해지자 학생들에게 ‘조퇴 립밤’으로 유명해졌다.
‘니베아 포맨’은 남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출시된 검푸른 패키지의 립밤이다. ‘번들거리지 않음’을 강조하며 ‘맨즈뷰티’ 흐름에 편승한 제품이지만, 다른 니베아 립밤들과 차이가 없는 구색한 모습을 보였다. 무색무향의 번들거리지 않는 립밤이 남성 소비자 전체의 취향을 대변한다는 니베아의 섣부른 일반화는 그들의 불순한 마케팅을 시사했다. 남성을 타깃으로 한 제품이 검푸른 색 패키지에 그치는, 니베아의 소박한 젠더 의식은 아직까지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
연예인도 일반인도 아닌 새로운 계급으로 등장한 얼짱13은 주로 인터넷 카페나 자신의 미니홈피에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공유하며 활동했다. 그 시절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얼짱들은 자기 개성을 가감 없이 뽐내는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와 동시에 그들을 동경하는 청소년들에게 강박적인 외모 관념을 조성했다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편 학생들 사이에선 얼짱을 ‘일반인보단 유명하지만, 연예인보단 친근한’ 계급으로, 2010년대를 ‘얼짱 시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이러한 얼짱의 중의적인 계급은 청소년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청소년들은 얼짱들의 옷과 화장품에 열광하고 모방하는 소비자이자, 얼짱 문화를 만들어나간 생산자였다. 마치 옆 학교에 다닐 것만 같았던 얼짱들은 청소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10대 문화를 이끌어갔다.
얼짱들의 영향력은 젠더 영역에 굳건히 자리 잡았던 고정관념에 대해 반문하는 10대들의 목소리를 생산했다. 꾸밈에 엄격한 경계가 존재했던 시기, 그들의 행보는 꾸밈 영역의 짐을 성별이 아닌 개인의 영역으로 옮겼다. 외모를 감싼 경계를 허무는 데 앞장 선 얼짱들의 모습은 당시 청소년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집배원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예쁜 공주님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빠른 배송 부탁드립니다.’ 핫핑크 색깔의 택배 박스에 쓰여진 문구는 쇼핑몰의 정체성을 무람없이 뽐낸다. 소녀나라는 당시 유행하는 아이템들을 저렴하게 판매하여 1020 소비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소녀나라는 10대 패션의 최전방에서 유행을 선도했다. 그중에서도 ‘아름송이 야상14’은 전국 여학생들의 앙큼한 외출복으로 통용되며 옷장 한 켠에서 두툼한 존재를 과시했다. 수많은 ‘포스트 한아름송이’를 양산한 아름송이 야상의 메가 히트로 얼짱의 파급력을 몸소 느낀 소녀나라는, 이후 ‘얼짱 팔찌15’, ‘얼짱 렌즈’ 등 ‘얼짱 아이템’을 중심으로 쇼핑몰을 꾸려나갔다.
금남의 구역 같은 소녀나라에도 그 속을 유유히 휘젓던 소년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결제 완료 문자부터 택배 박스의 문구까지 소녀나라는 자신들의 소비자를 꿋꿋이 ‘공주’라 지칭했다. 여성복을 제외한 상품에서까지 남성을 배제하며 소비자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를 묻었던 소녀나라는, 꽤나 불친절한 쇼핑몰이었다. 그럼에도 소년은 자신의 취향을 찾아 소녀나라에 꾸준한 발자국을 남겼으며, 소녀나라는 소년에게 길티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훈녀생정이란 ‘훈훈한 여성의 생활 정보’의 준말이다. 훈녀생정의 작성자와 독자층은 모두 10대 청소년으로 특히 여성 청소년들이 생활 속에서 도움 될 만한 정보를 글로 공유했다. 주로 올라온 훈녀생정으로는 ‘얼짱 메이크업 생정’, ‘수련회 코디 생정’, ‘조퇴하는 법’, ‘일진처럼 보이는 법’ 등이 있었으며, 건전과 불건전의 경계를 오가는 글 속에서 훈녀들의 과시욕을 엿볼 수 있었다.
훈녀생정에 사용된 언어는 인터넷 통신언어를 기반으로 한 ‘음슴체16’였다. 음슴체만의 간결한 맺음은 그들만의 언어로 서로를 결속했다. 훈녀생정은 비루한 내용과 세대 간 언어 통합을 저해하는 은어 사용을 이유로 일부 기성세대의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청소년 저마다 이상에 도달하는 방법을 공유하며 유대감을 느끼고자 한 세대 문화를 마냥 저속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검색창을 가득 채운 훈녀생정과 다르게 ‘훈남생정’은 비루하다. ‘훈훈한 남성’을 이루는 정보가 부족한 것은 유독 외모에 있어 편향된 시각과 더불어 남성 청소년의 소통장이 부재했음을 나타낸다. 남성이 여성의 공간에 불쑥 침입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건전하게 정보를 나눌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없음을 방증했다. 남성 군집에서 지워지고, 환영받지 못한 남성이 훈녀생정 속 훈녀에 기대어 온전치 못한 소속감을 느꼈다.
토니모리17의 전성기는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과 상통했다. 지붕킥에 출연해 큰 사랑을 받은 배우 ‘황정음’이 작품 중 ‘토니틴트’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틴트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지붕킥’은 해당 브랜드 인지도 상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후 토니모리가 본격적인 연예인 마케팅을 진행하게 했다.
한창 ‘스모키 메이크업’이 주목받기 시작할 때, 토니모리는 스모키 메이크업의 아이콘이었던 ‘가인’을 필두로 한 마케팅을 선보였다. 그녀가 사용하는 아이라이너로 ‘백 스테이지 젤 아이라이너’를 다양한 매체에 지속적으로 소개하며 제품의 인지도를 높였다. 동시에 기존 아이라이너와 달리, 짧은 붓이 내장된 아이라이너는 뷰티 예능 프로그램 《겟 잇 뷰티》에서 제품력과 발색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10대 여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으로 유행했던 ‘훈녀 메이크업’에 있어 자신의 피부보다 두 톤은 더 밝은 비비크림과 입술 안 쪽에만 바른 앵두빛 틴트, 최대한 길게 빼어 그린 검은 아이라인은 필수였다. 훈녀 메이크업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던 토니모리의 제품들은 대부분 만 원 이하의 가격으로, 아기자기한 패키지에 담겨 청소년 소비자들을 유혹했다. 10대들의 소비 동향을 빠르게 파악하며 상품을 기획한 그들은 훈녀 메이크업 속 자신들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수많은 화장품 직영점들이 뒤안길로 사라지는 와중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현명한 전략이었다.
귀여니18는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소설을 연재한 작가 ‘이윤세’의 필명이다. 2001년 《그놈은 멋있었다》를 연재해 인터넷 조회 수 800만, 판매 부수 50만을 기록했고, 《늑대의 유혹》, 《도레미파솔라시도》 등 몇몇 작품은 영화화되기도 했다.
인터넷 소설이 보급되기 시작하며 장르적인 논의가 문학계에 대두했다. 문단은 저속하고 통속적인 통신언어와 이모티콘의 남발을 지적하며 인터넷 소설이 문학에 포함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신파(新派)19적인 ‘귀여니 서사’는 독자들의 눈물을 한바탕 쏟게 만들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했다. 익숙한 신데렐라 구조 속 현실적인 인물들의 이야기, 왕자가 아닌 남성과 공주가 아닌 여성의 눈물 나는 로맨스는 독자들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문학의 엄숙함, 고리타분함을 넘어 인터넷 소설의 선두에 섰던 귀여니의 작품은 주제를 뒤적이고, 교훈을 찾는데 혈안인 태도에 반하며 엄격한 계몽성을 거부했다. 자신의 글이 그저 재밌는 이야기길 바란 귀여니는, 2000년대 가장 사랑받은 작가이자 한국 장르문학에서 계속 연구해야할 인물로 서있다. 그녀의 작품은 MP3 속에 아직 쉼표로 맺어있다. 끝나지 않은 귀여니의 작품을 기다린다.
2000년대 싸이월드의 유행은 인터넷 문화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미니홈피가 갖는 의미는 각자 달랐지만, 전국민의 ‘작은 방’이자 그 이면엔 타인의 시선을 지대하게 의식하던 우리들의 초상이었다. 미니홈피는 사진첩, 게시판, 방명록 등의 카테고리로 구성됐는데 그중 다이어리는 현재의 SNS와 닮으면서도 상당히 다른 결을 지녔다. 내 사유를 공개된 공간에 노출한다는 점에서 오늘과 유사하나 생각의 깊이, 사용한 단어의 수위가 보다 솔직하고 직설적이었다. 타인에게 직접적인 감정의 노출을 자중하는 오늘과 달리, 미니홈피의 다이어리엔 일종의 과시 욕구로써 더 대담하고 솔직한 말을 줄곧 남겼다.
또한 미니홈피는 개인의 취향과 개성과 취미의 종합이었다. ‘도토리20’로 채운 가상의 세계를 탐험하는 ‘파도타기’는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와 닮았다. 지인의 지인, 혹은 얼짱의 미니홈피를 수시로 기웃거리며 일면식도 없는 그들과 내적인 친밀감을 채웠다. 좋아하는 친구의 미니홈피를 염탐하다 ‘투데이 이벤트’에 당첨되면 귀를 붉히던 그때의 순수함은 파도가 쓸고 간 자국처럼 남아있다.
스마트 폰의 보급이 이전과 다른 형태의 SNS 서비스를 만들며 싸이월드 유저들은 점차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으로 둥지를 옮겨갔다. 하지만 여전히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퍼가요~♡’를 말하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SNS란 미니홈피의 결을 이어가는 또다른 플랫폼일 뿐이다.
일촌명은 싸이월드 내에서 일촌 신청 시 합의로 공유하는 별명이다. 상대방의 실제 별명은 지양하고, 일촌명 만큼은 친해 보이도록 하는 등 일촌명을 정하는 데 있어 암묵적인 수칙 또한 존재했다. 방금 알게 돼 어색한 우리지만 일말의 낯간지러움도 없이 ‘세상소중A―없이못살B’로 관계 짓곤 했다. 단골 일촌명으로는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따시남(따뜻한 시골 남자)’, ‘아무개 마눌―아무개 서방’, (정말 우리가 친하지 않다면 담백하게) ‘A형―O형’ 등이 있었다.
‘일촌평21’을 작성하면 작성자의 일촌명과 실명이 함께 기재됐다. 주로 서로의 안부를 전하거나 ‘반사 와주세요.(내 미니홈피에도 일촌평을 써달라는 뜻)’같은 평을 남겼다. 대문에 장식되는 글인 만큼 서로 비방하는 표현들은 쓰지 않았다.
자의식 과잉을 넘나들며 서로를 부르는 가상의 애칭은 현실과 무관한 그들만의 새로운 정의였다. 일촌을 맺은 순간부터 분명 우리는 돈독해졌고, 상대방의 미니홈피에 일촌평을 남긴다. ‘(반드시 무조건 항상 꼭 정말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미니홈피도 반사 와줘!’
네이트온은 시간 순으로 쌓였던 휴대폰 문자와는 달리 실시간으로 생동감 있는 대화를 가능하게 한 PC 기반의 메신저 서비스이다. 일대일 관계인 문자의 제약을 넘어서 다수와의 채팅을 허용하며, 모두가 접속 중인 모습은 나직한 소속감을 주었다.
앞머리에 ‘ㅈㅉ(전체 쪽지)’을 달고 ‘안 자는 사람~?’이라며 친구에게서 온 쪽지는 네이트온만의 안부 인사였다. 서로의 안녕을 물을 때 발신자가 수신자의 목록을 정할 수도 있었다. 허나 쪽지를 받은 수신자도 그 목록을 볼 수 있었기에, 나에게만 보낸 쪽지에 ‘ㅈㅉ’을 달았던 뻔뻔한 친구를 놀리기도 했다. 네이트온은 주로 학원이 마친 밤 9시에 가장 활발했지만 종종 깜깜한 새벽에 접속하는 일촌들도 있었다. 푸르스름한 새벽빛 아래 부모님 몰래하는 네이트온상의 대화는 비밀스럽고 묘한 분위기를 담아, 그 어느 때보다 재밌어 끝날 줄을 몰랐다. 또 학교 컴퓨터실에서 선생님 몰래한 네이트온 역시 실없는 답장도 입술을 꽉 깨물고 웃음을 참아야 했었을 만큼 신기한 마력을 담았다.
네이트온은 미니홈피와 연동되어 쪽지를 보내는 중에도 파도타기를 하며 무한히 싸이월드를 유영할 수 있었다. 일촌 수와 미니홈피 투데이에 무엇보다 예민했던 서로가 비밀 방명록을 통해 우정의 흔적을 남겼다. ‘읽씹(쪽지를 읽고 무시하는 행위)’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기의 네이트온은, 친구의 한 마디에 온 마음을 다한 아날로그 감성의 디지털 메신저로 남아 있다.
《롤러코스터22》의 대표 코너였던 남녀탐구생활은 대한민국 평범한 갑남을녀의 생활상을 유쾌하게 그렸다.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도 남자 몰라요. 사소한 것 하나부터 너무나 다른 남녀”라고 시작하는 건조한 목소리는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정형돈’, ‘정가은’의 생활 밀착형 연기와 성우의 독특하고 재치 있는 내레이션은 대한민국 전역에 남녀탐구생활 붐을 일으켰다. 형제간 싸움, 소개팅, 회사 생활 등 남녀탐구생활이 다루는 아주 일상적인 소재는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어 다양하게 패러디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유머는 남성을 ‘게으르고, 신경질적이며, 충동적인’ 모습으로, 여성을 ‘감정 기복이 심하고, 예민하고, 미용에 관심이 많은’ 인물로 비춰 그때의 소박한 남성성과 여성성을 그대로 답습한다. 당시 남녀탐구생활을 웃으며 소비했던 갑남을녀가 지금껏 여과되지 못한 채 오늘의 갑남을녀를 이루고 있다. 성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해로운 코미디는 더는 대중을 웃길 수 없다.
남녀 연예인이 서로 배우자가 되어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관찰형 예능으로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가 등장했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스타들의 연애담은 시청자들의 호기심과 설렘을 빚었다. 특히 ‘황정음―김용준’, ‘알렉스―신애’, ‘조권―가인’ 커플은 각자 다른 매력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프로그램에서 남성이 여성의 발을 정성스럽게 닦아주거나 노래를 불러주는 이벤트, 그리고 여성이 남성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일터에 응원 가는 내조의 장면은 계속해서 반복됐다. 위에 언급한 세 커플 이외에도 역시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며, 방영 내내 우결은 시청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비슷한 모습만을 노출해왔다. 우결이 양산한 가상의 결혼 생활은 달콤했지만 한 꺼풀 벗겨 생각하면, 생면부지 두 사람이 만나 하루아침 배우자가 됐음에도 언성 한 번 높이지 않는 모습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다.
우결은 ‘부엌에서 요리하는 여성, 매번 운전석에 앉은 남성의 모습’을 끊임없이 생산했고, 그러한 성역할이 모든 커플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식처럼 매 회 등장시켜 부부간 성역할 고착화에 일조했다. 모든 커플이 필수 코스로 수행했던 집들이 에피소드에서, 고군분투 음식을 만드는 아내와 멀찍이 서서 어색하게 거드는 남편의 모습은 익숙하게 관찰할 수 있는 현실임과 동시에 다양한 모습을 지우는 가상이기도 했다.
f(x) ― Airplane
단행본과 연속간행물은 『겹낫표』로, 영화와 TV 프로그램은 《겹화살괄호》로, 기타 예술작품은 〈화살괄호〉로 표시했다.
‘그때, 이때, 그 시절, 당시, 당대’ 등의 시제는 모두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삼았다.
〈핑크 노스탤지어(원제: Z 노스탤지어)〉는 디지털 산업과 함께 성장한 90년대를 지칭하는 ‘Z세대’를 빌려 시작했다. Z세대가 사랑한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소비와 문화를 스무 개의 표제어로 나누고 분석하며 오늘의 대안을 찾아보았다. 젠더의식에 있어 당대 폭력이 남긴 상흔과 시간이 흘러도 제자리걸음인 작금을 비판했지만, 이 본문엔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사랑과 용기가 바탕으로 펴있다. 무엇보다 Z세대를 언급했지만 결코 세대를 고착화하고 세대론을 재생산하며 답습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힌다.
이번 작업은 우리가 가장 사랑한 추억을 공유함과 동시에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에 반문하는 목소리이다. Z세대를 구분하는 표제어들은 가상과 현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연예인과 일반인, 죄책감과 기쁨 사이에 서있다. 어느 하나 명료하게 말하기 힘든 Z세대의 문화는 디지털과 경제 불황을 안고 태어난 세대원들의 시대가 가진 불안에 기인한다. 따라서 문화는 불안을 좀먹고 자란 세대원이 디지털 환경에서 만들어낸 자조적인 경계이다.
몇몇의 표제어는 지금에서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하며 당시의 모습에 자문하게 한다. 나는 보다 성숙해진 오늘에 감사하다. 아직 미온한 걸음이지만 우리는 쉬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 어디 하나 정연히 자리 잡지 못하는 표제어처럼 그리움과 아쉬움 사이에서 〈핑크 노스탤지어〉를 맺는다. 특정한 의미를 담을 수 없는 〈핑크 노스탤지어〉가 다양한 범주에서 해석되길 바란다.
기획 및 디자인: 정대봉
글: 장우찬
Copyright 2020. 정대봉 All rights reserved.